die Geschichte

김훈, 바다의 기별.

Sinners 2010. 10. 10. 16:20



여름내 그 물가에 나와서 닿을 수 없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생각했다.
마침내 와서 닿는 것들과 돌아오고 또 돌아오는 것들을 생각했다.
생각의 나라에는 길이 없어서 생각은 겉돌고 헤매었다.
생각은 생각되어지지 않았고, 생각되어지지 않는 생각은 아프고 슬펐다.



그 물가에서 온 여름을 혼자서 놀았다. 놀았다기 보다는 주저앉아 있었다.
사랑은 모든 닿을 수 없는것들의 이름이라고, 그 갯벌은 가르쳐 주었다.
내 영세한 사랑에도 풍경이 있다면, 아마도 이 빈곤한 물가의 저녁 썰물일 것이다.
사랑은 물가에 주저앉은 속수무책이다.



정맥의 저쪽으로부터는 아무런 기별도 오지 않았는데, 내륙의 작은 하천에 바다의 조짐들과 소금기가 와 닿듯이, 희미한 소금기 한 줄이 얼칫 스쳐오는 듯도 싶었고 아무런 냄새도 와 닿지 않는 듯도 싶었다.
환청이나 환시처럼 냄새에도 환후라는 것이 있어서 헛것에 코를 대고 숨을 빨아들이는 미망이 없지 않을 것인데, 헛것인가 하고 몸을 돌릴 때, 여름 장마의 습기 속으로 번지는 그 종잡을 수 없는 소금기는 멀리서 가늘게, 그러나 날카롭게 찌르며 다가오는 듯도 했다.
내 살아있는 몸 앞에서 '너'는 그렇게 가깝고 또 멀었으며, 그렇게 절박하고 또 모호했으며 희미한 저 쪽에서 뚜렷했다.



'사랑'의 메모장을 열어보니 '너'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언제 적은 글자인지는 기억이 없다.
'너' 아랫줄에 너는 이인칭인가 삼인칭인가, 라는 낙서도 적혀 있다.
이 안쓰러운 단어 몇 개를 징검다리로 늘어놓고 닿을 수 없는 저편으로 건너가려 했던 모양인데, 나는 무참해서 메모장을 덮는다.
내 빈곤한 '사랑'의 메모장은 거기서 끝나 있다. 더 이상의 단어는 적혀 있지 않다.
'관능'이라고 연필로 썼다가 지워버린 흔적이 있다. 아마도, 닿아지지 않는 관능의 슬픔으로 그 글자들을 지웠을 것이다.
너의 관능과 나의 관능 사이의 거리를 들여다보면서 그 두 글자를 지우개로 뭉개버렸을 것이다.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3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는 사별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고,
슬픔조차도 지난 시간속에서 바래지는 또 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
먼 슬픔이 다가와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인데,
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은 아니다.
우리 남매들이 더 이상 울지 않는 세월에도, 새로 들어온 무덤에서는 사람들이 울었다.
이제는 울지 않는 자들과 새로 울기 시작한 자들 사이에서 봄마다 풀들은 푸르게 빛났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과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과 모든, 참혹한 결핍들을 모조리 사랑이라고 부른다.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김훈의 글은 언제나 담담하고 진중하다.
에둘러 말하는 것 같지만 정곡을 찌른다.

화려한 꽃다발도, 한 송이의 꽃에서 왔음을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