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 Geschichte

한꺼번에 몰아서 근황보고 하는 짓은 정말로 그만두자..는 결심이 무색한 근황보고. (음?)

Sinners 2011. 4. 22. 04:25



 예. 그런 겁니다.
나란 인간은 언제나 작심 3..이라는 의미로.

 






 얼마 전(Ⅰ)
태어나서 처음으로 머리에서 새치가 나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뽑은 게 아닌, 엄마가 발견해서 뽑아 준 거지만.

그것도 아주 노골적으로 정수리 한 가운데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지하철에 앉아있을 때, 내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정수리의 새치를 보며 비웃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니 좀 민망해졌다.)


아무튼 정말 초체험이었기 때문에 적잖이 놀라웠다.
나도 모르게 달뜬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냉전중이었던 엄마를 향해 '나 이런 적 처음이야!'라고 내뱉었을 정도로.

엄마는 찌푸리듯 웃으며 '없던 새치까지 나오는 걸 보면, 니가 요즘 마음 고생이 정말 심하긴 심한가 보다..'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또 마음이 쿵-하고 곤두박질쳤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잖아.
그깟 새치 한 가닥까지 전부 당신의 탓으로 돌리며 미안해 하지 말란 말야..]
 
우리의 짧은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고
나의 첫 새치 체험은 그렇게 서글프고 씁쓸한 뒷맛을 남기며 끝났다.





 얼마 전(Ⅱ)
간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멀쩡했던 위가,
자고 일어나니 멀미가 심하게 왔을 때 같이 울렁거리고 불쾌한 느낌이 내내 지속되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증상은 악화되어 창자 마디마디가 끊어지는듯이 아파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통증의 강도가 평소의 그것과는 상당히 차원이 다른 수준이란 것은 직감했지만
그래도 일단 위가 말썽을 부리는 것은, 나에게 있어 꽤 흔한 일이었기 때문에
(신뢰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음에도)일단 내 몸의 자가치유 능력을 좀 더 믿어보기로 마음먹고 병원에 가는것을 잠시 보류했다.

그렇게 화장실 변기를 붙들고 노란 위액 외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토악질만으로 30분 정도를 보냈을 때쯤.
마침내 초록빛의 쓸개즙까지 게워내고 나니, 그제야 이건 뭔가 상당히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도착한 병원에서 내린 진단 결과는

의사도 알고
간호사도 알고
나도 아는 뻔-한 그것이었다.

다만, 기존의 위'염'에서 그 날만큼은 특별히 위'경련'으로 레벨 업 한 정도.

뭐가 됐든 도찐개찐으로 여겨진 내가, 노골적으로 안도하는 표정을 짓자 의사는 펄쩍 뛰며 학을 뗐다.
위염과 위경련은 하늘과 땅 차이라면서.

그 뒤로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뻔-한 레파토리의 반복.

잠을 자라.
밥을 먹어라.
스트레스 받지 말아라.
블라블라블라.

..이제와 새삼스러울것도 없지만 이렇게 문자로 시각화 시켜놓으니 확실히 웃기긴 하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좀 맥이 풀린달까.

처방이라고 듣고 온 해결책이 고작, 잠을 자고 밥을 먹으라는 말이라니..
지적 당한 부분이 전부, 인간이라면 아니 살아있는 동물이라면 응당 기본적으로 당연히 해 나가는 것들 뿐이다.-_-;

병원 문을 나서면서도 시큰둥하던 평소와는 달리, 이 날 만큼은 이런 내가 진짜 좀 쪽 팔릴 정도로 한심스러워서
최소한 '가장 기초적인 생활'정도는 제대로 해 나가자,고 결심했었다.
(나이 스물 다섯에 이런 걸 결심의 하나로 삼는다는 것 부터가 일단 치명적.) 

하지만.. 맨 처음에도 앞서 말했듯이
난 언제나 작심 3ㅂ..

하..




 내 질풍노도와 같던 시기를 함께 보낸 사람이었다.
나의 마음속에서 내 인생의 반 이상을 굳건한 기둥처럼 서 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있어 너무나 큰 몫을 차지하고 있기에
난 지금 너무나 황망하고 당혹스럽다.

눈 뜨고 코 베인 것만 같아서 진짜 짜증나고 화 나고 배신감 드는데
그보다 더 싫고 열 받는 건, 개나 소나 당신에 대해 이런 말 저런 말 닥치는 대로 내뱉고 있다는 거.

지금은 내가, 예전처럼 당신의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줄줄 흘리던 사춘기 10대도 아니고
솔직히 당신에 대한 마음이 예전처럼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나도 내 스스로가 이렇게 충격을 받을 줄은 몰랐다.

내 시간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만 같은 기분. 
정말 정말 유감이다.

뭐냐,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