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부림치다.

die Geschichte 2012. 3. 14. 01:48


감당 할 수 없이 매사가 서럽고 무겁게 느껴지는 시기가 있다. 
요즘이 그런 시기다. 

극한의 어두움과 극한의 밝음의 공존에서 오는 괴리감. 

내 스스로가 극과 극을 달리는 그 온도차에 놀라서 
쉽게 구부러지고 부러진다는 것이, 이 시기의 가장 힘든 점인 것 같다. 


손에 넣었던 것을 잃는다는 것이 슬프고,
익숙했던 것이 낯설게 되는 것이 두렵다. 


원하면 가질 수 있었으며, 주위의 모든것이 따뜻하고 포근했던 시절. 
그런, 소위 말하는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하고 추억한다는 것.
(반대로 말하면 그건, 지금 그만큼 행복하지 않다는 의미도 되겠지.) 

그것은 과연 나에게 있어 기쁨일지 슬픔일지, 스스로에게 바보같은 질문을 던져봤지만
그건 결국 기쁨임과 동시에 슬픔이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대답만이 남았다.

행복했던 기억이 기쁨으로 다가올 때 세상을 살만하다 느꼈고, 
행복했던 기억이 슬픔으로 다가올 때의 세상은 그저 도망치고 싶은 곳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요즘 난,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세상에 대한 사랑도 커져갔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과 집착에 가까운
꽤나 일그러지고 더럽혀진 종류의 것이지만..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을수록, 세상에 대한 애정이 강해진다는 이 모순의 반복.


결국 질 게 뻔한 이 싸움에서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질문 역시, 답은 이미 나와있다. 
나는 그 잔인한 결론을 똑바로 마주하며 걸어가야 한다.  

비효율적인 계획. 무용지물인 노력. 
그 밖에도 이해타산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뜨거운 마음의 공명들을 등에 지고. 


궁극적인 행복이란 건, 따지고 보면 사실 비겁한 말장난일 뿐이다. 
무슨 짓을 한들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는 없으니까. 

그렇기에 내가 살아가며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많이 만드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궁극이 아닌, 순간.
찰나를 살아가는 존재니까. 


그래도 인간만이 유일하게 궁극을 망상하고 궁극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게 또 재미있단 말이지. 
그것이 축복임과 동시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절망의 시작이란 걸 알면서도.
이런점에서 인간은 존재하던 그 순간부터 미련했던 게 아닐까 싶고..
(어디까지나 여담이지만.)


방법론을 따지기 이전에

행복.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혹자는 행복에 대해 정의내리기를,
행복해서 웃는것이 아닌 웃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라 했다.

하지만 몸은 그렇게 머리를 쉬이 따라오지 못한다. 

인생의 어떤 상황도 웃으면 행복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슬픔이 된다는
그 이분법적인 성향의 사고가 나에겐 크게 와닿지 않는다.


나의 몸은, 매정하고 싸늘한 뒷모습과 예전과 다른 행동들에 쉽게 상처받고 슬퍼한다. 
너덜너덜 찢어진 마음은 지치다 못해, 마치 습관처럼 익숙하게 복수를 꿈꾸고 
이 들쑥날쑥한 상황이 지긋지긋해지면, 결국 모든것에 등을 돌려버린 후 제멋대로 마침표를 찍어버릴 것이다.
그러면 차갑게 식은 머리는 또 다시 내 마음을 원망하게 되겠지. 


정신없이 써내려가다보니
자신의 꼴사나운 모습을 용케 자각하고 잘도 떠벌리고 있구나 싶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리고, 끝이 보일 기미가 없는 이 거지같은 굴레속에서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정말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Posted by Sin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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