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웃었다.
뭐가 웃겼지?
오랜만이라는 감상이?
잘 지냈냐는 안부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웃음에 울컥 뿔이 나서 한 마디 쏘아붙이려는 나에게 너는
약속장소로 나오는 내내 가장 먼저 무슨 말을 꺼내면 좋을지 계속 생각했다고 했다.
온갖 경우를 따져가며 말을 고르고 골랐지만 이렇게나 평범하고 상투적인 말은 미처 예상에 없었다면서
긴장하면 단순해지는 건 여전하다며 또 한 번 웃었다.
그런 너 역시 '고생했어'라는 뻔한 대답으로 받아친 주제에.
네가 고른 식당의 런치 메뉴는 내 입에도 잘 맞았다.
나의 밥 먹는 속도가 예전만큼 빠르지 않다는 걸 알아챈 너는 나보다 한 박자 늦게 포크를 내려놓았다.
커피가 맛있고 조용한 분위기의 카페들을 예전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었다.
그게 어쩐지 기특하고 뿌듯해서 다리 좋아줄까? 하고 물었더니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킬킬거리며 얼음을 으적으적 씹어먹었다.
영화는,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다.
보자고 한 네가 민망해 할까 싶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옆에서 볼멘 소리로 잔뜩 불평을 늘어놓길래 나도 모르게 크게 웃었다.
잠시 잊고 있었어. 우린 영화 취향이 무서울만치 똑같았지.
잡은 손이 뜨거워서 깜짝 놀랐다.
너는 이른 열감기에 걸려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반대로 내 손이 차갑게 느껴진다며 멋쩍어했다.
서로의 기억과 정반대로 얽히는 이 묘한 감각에,
둘 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손만 만지작거렸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란 말에 흔들렸다.
짧았다. 하지만 길었다.
키스가 늘었다.
장난이 치고 싶어져서, 누구한테 배웠어?하고 물으려다가
마지막의 의미를 망치고 싶지 않아 관뒀다.
당장 내일이라도 다시 만날 것처럼 헤어졌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오기 힘들거라는 걸 안다.
그래서 너와의 하루는 꿈 같이 짧았다.
하지만 그 어떤 날보다 여유롭고 느긋했다.
잊지 않을게.
고마워.
잘 지내-